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문단 편집) == 평가 == [include(틀:스포일러)] '''[[우정]]'''과 '''[[추억]]'''을 테마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본편 시점으로부터 5년 전, [[혼마 메이코]](멘마)의 [[실족사]]와 이런저런 인간관계에 의해 큰 트라우마를 얻게 되어 내면적 성장이 정체된 비관적인 성격의 주인공 [[야도미 진타]](진땅)가 영혼 형태로 재등장한 멘마로 인해 움직이게 되고,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역시 같은 과거에 얽혀있던 초평화 버스터즈 멤버 5인방까지[* 츠루미 치리코는 멘마의 죽음에 책임이 아예 없어서 그런지 버스터즈의 다른 멤버들만큼의 죄책감이 없다. 즉, 치리코를 제외하면 다들 [[PTSD]]에 시달리다가 멘마가 성불한 후에야 치유가 된 것.] 엮이면서 갈등을 풀어내며 재결합하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문득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련함을 군데군데 녹여낸 연출들은 많은 호응과 공감을 이끌어냈다. 작화 & 연출 & 음악 &캐릭터 디자인 & 성우들의 연기가 어우러져 감동적인 청춘 성장물로서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다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는 편. 다만, 노이타미나 애니메이션 특유의 분량 문제 때문인지 착실하게 기승전결에 맞춰 감정적인 연결을 잘 이끌어낸 초중반과는 달리, 중후반부터는 별다른 복선도 없이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과잉된다던가, 이를 해소하는 방식도 다소 엉뚱하거나 급전개가 남발돼서 개연성 없고 신파적인 요소가 다수 개입되었다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위 단점의 대표적인 예로 폭죽 이벤트 이후의 뒤풀이와 최종화의 급전개를 꼽을 수 있는데, 비록 서로가 앙금을 어느 정도 덜어내고 하나의 목표를 매진하긴 하지만 엄연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꽃놀이를 준비하던 이들이 죄책감을 보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면서 멘마의 성불이 언급되자 모두가 갑자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엉엉 울어댄 뒤, 진땅이 뜬금없이 아나루의 가짜 눈썹이 비뚤어진 것을 들어서 웃기다며 웃음보를 터뜨려대고 그걸 모두가 호응하여 웃음바다를 만드는 시퀀스 등은 시청자들한테 슬프거나 해학적으로 다가온다기보단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다. 망령인 멘마가 물체와 상호작용하는 부분도 많은 혼란을 남겼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범위에서 예외는 있지만 보통 망령은 물체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물체를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은 육체가 있다는 것이니 멘마는 망령이 아니라는 소리가 된다.] 물론 극초반에 멘마가 아나루와 츠루코의 싸움을 물리적으로 뜯어 말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사람한테 달려들어 어깨를 약간 무겁게 하거나, 문을 열거나, 책상을 건드려 컵을 떨어뜨리거나, 게임기 혹은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샤워를 하거나(?), 이불을 덮거나, 음식을 먹거나 등등[* 사실 그냥 보면 평범한 사람하고 크게 다를 게 없다.] 힘이 약한 선에서 사소한 것 정도로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듯 하다. 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어떠한 기준을 근거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장면마다 연출이 제각각이며 여기에 하나 하나 다 의미를 부여하면 앞뒤가 안 맞게 된다.[* 단적인 예로 1화에서 멘마가 온몸으로 한 것도 아니며 넘어지다 한 것도 아닌 그냥 살짝 쳤을 뿐인데 책상이 저 정도로 흔들리는 건 게임기 다룰 정도의 힘 가지고는 절대 안된다.][* 중후반부에 멘마가 빵이 가득 든 그릇을 나르는데 효과음으로 보아 그릇의 재질은 사기이며 이 장면만 보면 결코 힘이 약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멘마가 무겁든 가볍든 물체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도대체 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았는가?" 라는 부분에 의문이 남게 된다. 멘마가 일부러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하는 언행이나 그러한 기미는 없으며[* 애초에 숨기기는 커녕 다 까발리고 다닌다.] 멘마 입장에서는 진땅이 친구들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법한데 작품 내에서는 멘마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 혹은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게 문제인 이유는 작중 발생하는 '''모든''' 갈등의 시발점이 오로지 진땅만이 멘마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가장 근본적인 부분부터 나사가 안 맞는 부분이 발생했으며, 이는 명백한 작가 편의주의적 전개다. 시청자 취향에 따라 이해해줄 수는 있고 그리 중요한 대목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허점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이 작품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멘마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 보다는 "멘마의 죽음으로 사이가 소원해진 친구들이 멘마를 계기로 화해하고 다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과 그 중에서도 특히 상태가 심각했던 진타의 이야기"이기에 처음부터 멘마가 다 해결하기보단 스토리의 전개를 위해 의도적으로 멘마의 실체를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노출시키는 것을 늦췄다고 할 수 있다. 그 의도적으로 늦추는 것에 개연성이 부족할 뿐. 물론 위의 사항은 전술했듯이 별로 중요한 대목이 아니다. 전개의 흐름만 더럽히며 이 애니의 작품성과 본질을 흐려버리는 "그 날 재현" 씬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답이 없다고 할 수 있는데, 당사자 앞에서 당사자가 안타깝게도 사망했던 "그 날"을 재현하자고 발언하는 [[마츠유키 아츠무|유키아츠]]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주변 캐릭터들까지... 아무리 서로간의 갈등과 관계가 복잡하다고는 하나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렇다보니 시청자의 성향에 따라서 호블호가 극히 갈리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위에 언급된 단점들을 '뭐 그럴수도 있지' 라는 식으로 가볍게 넘기면서 멘마의 성불을 결말로 잘 끝낸 것에 의의를 둔다면 그럭저럭 볼 수 있는 편이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따지는 취향이라면 중반부터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양학선]]이 추천한 작품이라는 등의 이슈에 힘입어 압도적으로 호평받기도 하는 반면,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과대평가가 지나치게 된 거품 낀 작품으로 혹평하는 등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다. 방영 당시에는 명작으로 평가받았으나, 시간이 흐르고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애니메이션 팬덤이 신파적인 연출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면서 뒤늦게 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혹평이 더 많은 편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후에 같은 제작진이 만든 [[하늘의 푸르름을 아는 사람이여]]는 신파적인 요소가 아예 배제되어 있다.] 평론가 [[히카와 류스케]]는 호평했다. [[https://mine.place/page/a584925f-8c0f-44e3-8299-377c0e8a28e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